스토리텔링

[스토리텔링 테크닉] 반지의 제왕 : 힘의 반지 -> 주인공이 극을 이끌지 못할 때

회색고양이76 2026. 1. 11. 02:31

*스포주의*

 

 

반지의 제왕의 오랜 팬임에도 불구하고 이 드라마에 대한 관심은 크게 없었습니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별로 관심이 가지 않더라고요.

거기에 해외 유튜브 채널에서 쏟아져나오는 수많은 리뷰를 보면서

'아, 역시 별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즌2까지 나오고 어느덧 처음 반지의 제왕 : 힘의 반지가 나온 지도 꽤 시간이 흘렀습니다.

시크릿 레벨을 보고 싶어서 아마존 프라임을 구매했다가 늦게나마 이 작품을 보게 되었는데요.

음,,, 정말 할 말이 많습니다.

많지만, 각본에만 집중해서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포스터를 보나, 이야기로 보나, 스크린 타임으로 보나 주인공은 갈라드리엘입니다.

극의 중심 갈등 역시 갈라드리엘과 사우론의 갈등이고요.

이 드라마 각본의 가장 큰 문제는 주인공과 핵심 갈등에 집중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일단 갈라드리엘의 캐릭터 구축에 실패했습니다.

드라마는 갈라드리엘의 어린 시절로부터 시작합니다.

어린 시절의 그녀는 '참지 않는 인물'이었습니다.

자기를 따돌리는(?) 친구가 그녀가 만든 종이배를 망가트리자, 그녀의 첫 반응은

그를 쓰러트리고 때려눕히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나서 드라마는 급전개를 거쳐 그녀의 오빠가 죽고 복수를 맹세한 그녀는

그냥 어린 시절 그대로 행동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게 진짜 큰 문제입니다.

 

어떤 인물이 큰 사건을 거쳐 타락하는 모습을 그리기 위해서는

타락하기 전의 모습과 타락한 후의 모습이 극명하게 대비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관객들이 타락한 인물을 보며 가슴 아파하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길 바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을 참 잘하는 작품이 반지의 제왕입니다.

샤이아에서 뛰어놀던 프로도와 절대반지에 결국 굴복하여 타락한 프로도의 모습을 보면

거의 다른 사람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우리가 알던 프로도는 거기에 없죠.

그렇기에 "갈라드리엘이 오빠의 죽음으로 인해 복수귀가 되어 점차 타락한다"는 스토리텔링을 하고 싶었다면,

오빠의 죽음 전에 그녀는 냉혹한 복수귀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드라마는 이런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습니다.

오빠의 죽음은 "망치"에 해당합니다.

망치가 내려쳐지고, 갈라드리엘이라는 이름의 못은 이야기에 박히게 됩니다.

극적 중심 질문이 제시되고, 이야기의 장르가 정해집니다.

그런데, 이걸 하기 전에 반드시 캐릭터를 설명해야 합니다.

이 캐릭터가 뭐 하는 캐릭터이고, 어떤 성격을 가지고, 뭘 좋아하고 등등 관객에게 설명해 줘야 합니다.

그래야, 망치가 떨어진 후에 그 인물이 어떻게 행동할지 예측하기도 하고, 궁금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드라마의 초반부는 반드시 갈라드리엘이 어떤 엘프였는지 설명하는 데 시간을 썼어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죠.

바로 망치로 넘어갑니다. 오빠가 죽고, 그녀는 고집불통 복수귀 사령관이 됩니다.

아무리 부하들이 그녀의 계획을 반대해도 그녀는 듣지 않습니다.

결국 모든 부하가 그녀를 떠나려 하자 그제야 그녀는 원정을 멈추고 돌아가지만,

그 이후의 행보도 맹목적으로 사우론을 쫓는 것뿐입니다.

 

 

주인공을 "성장형"으로 만들고 싶었던 마음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이야기가 힘을 얻지 못한 이유는 그녀가 복수귀가 되기 전의 모습을 우리가 보지 못했고

그녀에게 오빠가 어떤 존재인지 우리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드라마만 본 사람에게 갈라드리엘은 그냥 싸가지없고 말 안 듣고 자기가 잘난 줄 아는 깐프일 뿐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그녀가 매력 없는 이유입니다.

오빠의 검은 그녀의 복수를 의미합니다.

시즌1의 마지막에서 그녀는 반지를 만들기 위해 오빠의 검을 포기하죠.

이건 그녀가 복수의 길을 포기했다는 상징적인 장면이지만, 정말 아무런 임펙트도 없었습니다.

그저 공허하기만 합니다.

 

소중한 인물을 잃고 복수에 눈이 멀어

훌륭했던 인물이 그 전의 장점을 잃고 그의 단점들이 드러나거나 생겨나고

전혀 다른 인물이 되어 살아가다가 많은 일을 겪고 변하는(완전히 타락하든, 정신 차리든) 이야기는

많이 써먹은 스토리텔링이지만 매력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잘만 만들면 됩니다.

안타깝게도 이번 드라마에서는 완전히 실패했습니다.

 

그렇다면, 갈라드리엘의 캐릭터 아크와

그녀와 사우론의 갈등에 집중하지 않은 드라마는 대체 그 많은 시간 동안 무엇을 했을까요?

 

 

음,,, 그냥 쓸데없는 서브플롯에 엄청난 시간을 쏟습니다.

시즌1에서 제가 기억하는 이야기들이 

1) 갈라드리엘의 이야기 (메인)

2) 엘론드와 두린 이야기

3) 남부 &오르크 군단 이야기

4) 털발족과 이방인 이야기

5) 누메노리안 이야기

 

무려 5개입니다.

핵심이 되는 이야기에 집중해야 관객들이 거기에 집중해서 볼 텐데, 

세상에 서브플롯이 너무나 많습니다.

대부분 플롯은 시즌1의 후반부에 하나의 큰 줄기로 만나긴 하지만,

만났다가 거의 바로 헤어지고요.

털발족 이야기는 끝까지 메인 스트림에 끼지 못합니다.

시즌2 끝까지 말이죠.

진짜 큰 문제는 이 이야기들이 메인 스트림이 되는 갈라드리엘과 사우론의 갈등과

별로 상관이 없어서 그냥 다 사족으로 생각될 뿐이라는 것입니다.

헤일로 드라마도 똑같은 문제를 가지고 있는데,

아니, 헤일로 가지고 드라마를 만들었으면 마스터 치프의 이야기를 해야 하는데, 

별로 관심도 없는 캐릭터 이야기를 줄곧 하는 것입니다.

별로 상관도 없는데 말이죠.

이 드라마도 마찬가지입니다.

 

드라마 보면서 참 정신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대체 이 드라마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도 잘 모르겠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실마릴리온을 읽었기에 대충 이해는 갔지만, 짜증이 났습니다.

제대로 만든 게 하나도 없었거든요.

거기에 그렇게 돈을 쏟고도 실마릴리온 판권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게 진짜 코미디죠.

 

상상만 하던 세계를 볼 수 있다는 것은 나름 즐거웠습니다.

CG나 의상, 소품 등도 돈 참 많이 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 드라마가 대중과 팬들 모두에게 외면받는 상항까지 온 것은

각본에 심각한 결함이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