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모나리자는 참 매혹적인 그림입니다.
어딘가 신비롭고 비밀을 숨기고 있는 듯한 저 미소.
너무나 매력적이어서 온갖 음모론을 다 섞어 넣어 만든 소설인 다빈치 코드의 소재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명화일까요?
그냥 좀 뿌옇게 보이는 유화 기법(스푸마토 기법)으로 그린 그림일 뿐인데, 대체 왜?
뒤쪽의 배경이 보이십니까?
자세히 보면 배경이 이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게 그냥 이어지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지형이랑 식생 자체가 다릅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년에 프랑스의 왕 프랑수아 1세 밑에서
그의 마지막 3년을 보냅니다.
프랑수아 1세는 그동안 그에게 그 어떠한 작품도 요구하지 않았으니 그 역시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사망 후 그의 제자 살라이가 그림을 물려받았고,
이후 프랑수아 1세가 정당하게 구입해 프랑스 왕실 수유가 되었습니다.
(이게 이탈리아 화가의 그림이 지금까지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이유입니다.)
다빈치는 죽을 때까지 모나리자를 수정하며 살았습니다.
그런 그가 배경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몰랐을까요?
시간이 부족했을까요?
이것은 의도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일까요?

르네상스 당시 지식인들에게 라틴어와 라틴어로 쓰인 그리스 고전들은 거의 필수 교양이었습니다.
르네상스 3대 천재 중 하나였던 다빈치는 독학으로 라틴어를 익힌 사람이었습니다.
그 고전 중에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여기서부터는 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나'라는 것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세포일까요? 우리 몸의 모든 세포는 7년 정도면 모두 다른 것으로 교체됩니다.
그렇다면 DNA일까요?
DNA의 복제 과정에서 오류는 필연적으로 일어납니다.
기억일까요?
하지만 기억도 흐려지고 변질되고 맙니다.
나라는 것의 본질은 변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변하고 그 속에 본질이 있다. 그리고 그곳에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이
변신 이야기의 주제였습니다.
다빈치가 배경을 잘못 그린 것이 아닙니다.
같은 공간, 다른 시간을 그린 것입니다.
지형과 식생이 완전히 바뀌어버릴 정도로 오랜 시간 차이가 같은 공간 사이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미소는 짧습니다.
두 거대한 시간의 차이와 그 속에서 찰나와 같은 여인의 미소가 스쳐지나갈 때,
다빈치는 아름다움의 본질을 깨달은 것이 아닐까요?
'미술'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서양미술사] 왜 여자를 가슴 달린 남자처럼 표현했을까? (0) | 2026.01.29 |
|---|---|
| 쥘 바스티앙 르파주(Jules Bastien-Lepage) - 나의 최애 (0) | 2026.01.26 |
| [미술]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과 이삭 줍는 여인들의 차이 (1) | 2026.01.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