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쥘 브르통의 이삭 줍고 돌아오는 여인들입니다.
해가 지는 노을, 이른 저녁 초승달이 떠 있고, 왼쪽의 마을 파수꾼은 사람들에게 이제 올라오라고 소리칩니다.
여인들은 저마다 밀 이삭을 짊어지고 걸어오고 있습니다.
한적한 시골의 평화로운 모습이 거의 경건하게 느껴질 정도입니다.
이 그림이 그려진 당대에는 최고의 사실주의 그림이라며 극찬받았었고,
이 그림을 그린 쥘 브르통 역시 살아생전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화가였습니다.
그런데 아마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은 이 그림 오늘 처음 봤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모두가 아는 그림이 있습니다.

장 프랑수아 밀레의 이삭 줍는 여인들입니다.
이전의 그림과 비교해 보면 좀 심심해 보일 수도 있는 이 그림.
모두가 알고 교과서에도 실려있고, 더 훌륭하고 높은 작품성으로 인정받는 이 그림 대체 왜 그럴까요?
우선 배경에 집중해 볼까요?
왼쪽 위에 산처럼 쌓여있는 것은 밀 이삭입니다.
그 오른쪽에 수레에도 엄청난 양의 밀이 쌓여있죠.
풍년이었습니다.
중앙에는 흰색 옷을 입은 사람들이 감시받으며 노동하고 있고,
가장 오른쪽에는 말에 탄 귀족이 아주 흐리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가장 크게 그려진 3명의 여인은 무엇을 하고 있나요?
이삭을 줍고 있습니다.
배가 고픈 거예요. 저렇게 풍년인데, 정작 농사를 지은 사람들에게 돌아가는 것은 얼마 없는 것입니다.
밀레는 평생을 프랑스의 시골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에게 복이 있나니."라고 말하는 기독교에서 가난한 농부들은 가장 훌륭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기독교인이었던 빈센트 반 고흐가 가장 존경했던 화가 역시 밀레였습니다.
그의 삶에는 진정성이 있었습니다.
프랑스의 드넓은 곡창지대.
그곳에서 혹독한 노동을 하는 농부들.
그녀들의 모습은 쥘 브르통이 묘사한 것처럼 뽀얗고 예쁘지 않았습니다.
거칠고 검게 그을린 채 배가 고파 이삭을 줍는 게 당시 농부들의 현실이었습니다.
밀레는 농촌의 이런 모습은 그대로 담은 것입니다.
예술 작품은 이렇듯 종종 과거의 역사를 보여주는 증거로써도 그 가치를 가지기도 합니다.
고흐가 쥘 브르통을 찾아갔을 때, 그의 집이 너무 부유하고 견고한 성벽처럼 느껴져서
자신의 초라한 모습에 위축되어 차마 문을 두드리지 못하고 돌아갔습니다.
후대의 쥘 브르통과 밀레의 명성 차이가 나는 것은 이런 진정성 때문입니다.
이것이 두 그림의,
더 나아가서는 두 위대한 화가의 차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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